염지현 기자
깊은 땅 속 광물 탐사, 소프트웨어로 더 쉬워진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케이크,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면 단면이 보이는 조각 케이크에서 힌트를 얻으면 된다. 달콤한 딸기나 새콤한 블루베리는 먹어보지 않아도 그 맛이 상상돼 선택에 큰 도움이 된다.
조각 케이크의 단면을 미리 보면, 맛을 상상할 수 있어 케이크 선택에 도움이 된다. - GIB 제공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속은 어떨까. 땅 속에 어떤 광물이, 어떤 지질 구조가 있는지, 혹시 싱크홀이 있지는 않은지 직접 파보기 전에는 그 속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예고 없이 어느 날 눈앞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나 인명 피해를 주기도 하고, 때론 지진을 일으켜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해를 만들기도 한다. 직접 파보지 않고도 그 속을 들여다 볼 순 없을까.
수심이 깊어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해저 깊은 곳도,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속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정확도는 기술의 발전으로 계속 나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기름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나라’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탐사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자원 탐사 단계는 개발이나 생성 단계와 비교해 해외 굴지의 전문 기업도 성공률이 0.1%에 불과하다. - (주)동아사이언스(이미지 소스:GIB) 제공
● 광물公, ‘국내 최초’ 국산 탐사 소프트웨어 상용화 초읽기
한국광물자원공사(이하 광물공)는 지난 5년간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지질, 광물 자원, 광체 탐사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힘써왔다. 2013년부터 이 일을 책임져 온 자원개발기술팀 고광범 박사는 마침내 6가지 소프트웨어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표적인 문서 편집 소프트웨어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MS Office)’가 있다. 여기에는 작성하려는 문서 성격에 따라 특화된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다양한 문서 편집 도구가 패키지로 구성돼 있다. 줄글 중심의 문서가 필요할 땐 주로 워드, 표 중심의 문서가 필요할 땐 주로 엑셀을 사용하지만, 경우에 따라 엑셀의 표나 그래프를 워드로 복사해서 붙여넣을 수도 있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정보가 호환되는 것이다. 비슷한 기능의 국산 업무용 프로그램 모음으로는 한글과컴퓨터의 ‘한컴오피스’가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는 지난해 국내탐사전용 SW 개발에 성공했고, 올해 상용화를 시작했다. - (주)동아사이언스(이미지 소스:GIB) 제공
탐사계에서도 새로운 광물 탐사를 돕는 탐사 전용 국산 소프트웨어가 탄생했다. 고 박사는 3년 여 간의 노력 끝에 자력탐사, 방사능 탐사, 근적외선 분석, 3D 지질 모델링, 중력 탐사, 전자 탐사를 위한 6개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현재 자력 탐사, 3D 지질 모델링 등이 상용화되었으며, 나머지 소프트웨어도 올해 중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다.
직접 탐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연구개발팀의 정상원 연구원은 “광물공에서 준비한 탐사 소프트웨어 시리즈는 탐사 소프트계의 한컴오피스와 같다”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 사이 ‘정보 호환 이 가능’하고, ‘국산’이라는 점에서 한컴오피스에 비유할 수 있다.
새로운 광물을 탐사하기 위해선 사전에 지반 조사나 물리 탐사, 시추 등의 방법으로 기초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 고 박사팀은 이렇게 얻어지는 각기 다른 성격의 로우 데이터(Raw data)를 융합연산 방식으로 하나로 취합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융합연산 방식이란 수학에서 쓰는 수치해석학과 지구통계학을 기초로 설계한 알고리즘으로 데이터 처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자는 이 알고리즘에 로우 데이터를 입력해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연결하고 변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땅 속 세계를 사실과 가깝게 구현한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각각의 로우 데이터를 가공해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해도, 각 데이터 값을 나타내는 단위가 달라 여러 번 후처리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취합한 데이터의 연결고리를 찾아, 유의미한 데이터 처리가 손쉽게 가능하다.
또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이용해 가상의 3차원 공간에 지질 구조를 구현하는 3D 지질 모델링까지 가능하다. 3D 지질 모델링으로 얻은 데이터는 탐사의 실패 확률을 낮추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3차원 그래픽으로 360˚ 돌려 확인할 수 있다.
광물공에서 개발한 케이모드스튜디오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지질 구조 등을 3차원으로 구현해 볼 수 있다. - 한국광물자원공사 제공
● 자원 탐사 분야, 새로운 도약 기대돼
사실 탐사 분야는 수요가 많지 않아 국내 지질탐사 기업과 대학들은 소규모 살림을 꾸려왔다. 광물자원개발 과정은 탐사-개발-생산 단계로 이뤄진다. 그 첫 관문인 자원 탐사 단계는 지표와 지하에 있는 경제성 있는 광물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개발이나 생산 단계에 비해 성공률이 가장 낮다. 다국적 광산 자원 업체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리오 틴토(Rio Tinto Ltd.)마저도 2015년 자원 탐사 성공률이 0.1% 수준이다.
자원 탐사 단계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다각도 탐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이 자료를 정밀하고 정확하게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내야 한다. 고 박사팀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직접 개발에 나섰다.
고 박사팀은 국내 환경에서 필요한 필수 기능만 탑재하고, 불필요한 해외 데이터 자료는 과감히 덜어내 소프트웨어의 처리 속도를 높였다. 또 사용자 메뉴를 모두 한국어로 지원하는 등 기존 외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불편했던 점을 최소화 했다.
지난 달 2월 24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한국광물자원공사 교육장에서는 케이모드스튜디오 프로그램 시연회가 열렸다. 프로그램을 설계한 고광범 박사가 직접 시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 염지현 제공
특히 상용화를 시작한 3D 지질 모델링 프로그램인 ‘케이모드스튜디오(KmodStudio)’는 여러 번의 시연회를 통해 국내 중소 광산기업과 자원특성화대학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광물공을 찾은 지난 달 말에도 교육장에서 시연회가 한창이었다.
광물공이 선보인 탐사 소프트웨어는 고비용의 원인이었던 방대한 분량의 백업 데이터 중 국내 광체 개발에 필요한 것만 엄선, 외산 소프트웨어보다 가격을 1/10인 1000만 원 수준으로 줄였다. 하지만 1/10 수준으로 낮춘 가격도 소기업에게는 부담이 큰 금액이라는 의견도 있다. 광물공은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협력 대학 수업용 라이센스는 100만 원 정도에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손에 익힌 학생들이 관련 업계로 취업할 경우, 실무에서도 도움이 될 전망이라 업계에서 이 정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케이모드스튜디오를 첫 번째로 계약한 자원탐사서비스 업체 코탐(KOTAM)의 유영철 대표는 “땅속 사정을 알기 위해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비싼 외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왔다”며, “케이모드스튜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이 부각된 점과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예로 한국광해공단은 일제 시대 자원 개발에 쓰이고 방치된 광산을 대상으로 지반의 안정성이나 정밀조사 용역을 하는데 코탐에서 이 사업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이런 현장에서는 광체의 폭이나 갱도, 지반 조사용 시추공, 물리탐사 단면 등 종합적인 3차원 해석이 필요하다. 특히 광체는 지하의 불규칙한 형상을 하고 있어 예측이 어려운데, 케이모드스튜디오를 활용하면 2차원 종이단면을 몇 장 스캔한 뒤 마우스 클릭만 몇 번 하면 보기 좋은 3차원 광체가 완성된다.
유 대표는 “기존 외산 프로그램은 갱도를 한 가지 모양(주로 직사각형이나 원형)으로만 3D로 설계할 수 있었는데, 케이모드스튜디오는 직사각형이나 원형은 물론, 아치형 등의 모양으로 재현할 수 있어 실제 지하갱도와 가장 유사한 모양으로 3D 설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가 이끄는 코탐은 올해나 내년쯤 몽골에서 수행할 자원탐사 또는 몽골 광해방지사업에 케이모드스튜디오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처럼 사용자들의 평가는 꽤 긍정적이었다. 아직 사용 기간이 짧아 성과를 따지긴 이른 단계지만, 30년 이상 전문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오던 외산 프로그램의 70%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 박사팀에서 실무 개발자로 활약한 정 연구원은 “업그레이드 버전에는 사용자가 요구하는 3D 프린터 출력 기능 등을 추가하는 등 계속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